2013년 4월 23일 화요일

두산베어스 영구결번


영구 결번

DoosanBearsRetired54Flag.svg
포수: 1985-1986
1986년 결번
DoosanBearsRetired21Flag.svg
투수: 1982-1996
2002년 결번
두산 베어스의 영구 결번은 54번, 21번이며, 특히 54번은 성적 비관으로 인해 자살한 김영신의 배번으로, OB 베어스 측에서 애도하는 의미에서 영결식을 치르고, 대한민국 프로 야구 최초로 영구 결번했다.[52]또한 21번은 박철순의 번호로 2002년 4월 5일 시즌 개막전 경기 전 영구 결번식을 통해서 영구 결번되었

두산베어스의 역사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야구단 ( 1982년 ~ 1983년 )

OB 베어스의 첫 경기는 MBC 청룡과의 경기로 박철순의 4안타 2실점(1자책점) 완투승으로 승리했다.[1] 이후 4월 중순부터 분위기가 반전되어 5월 2일 홈경기에서는 10승 5패로 단독 선두에 나섰다.[2] 이후 9연승 등으로 시즌 4경기를 남겨두고 28승 8패로 전기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3] 후기리그에서도 좋은 페이스를 유지했으나 9월 29일 대구 삼성 전에서 박철순의 11 2/3이닝 2실점 완투패로 종합 우승에는 실패했다.[4] 그 경기에서, 또한 24승을 거뒀던 박철순이 '요부 추간판 헤르니아'의 디스크 증상으로 한국시리즈 출전이 불투명해졌다.[5]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15회 3-3 무승부로 승부를 결정짓지 못한 두 팀은,[6] 다음 날, OB 선발 계형철이 2회 6점을 내주는 등의 투구로 대패를 당했다.[7] 그리고 3차전, 박철순은 국소마취제을 맞으면서[8] 3.1이닝 던지며 OB가 5-3으로 승리했다.[9] 이후 4, 5차천에서 내리 이긴 OB는 6차전에 박철순과 이선희의 선발 맞대결에서 8회까지 3-3 균형이 이어졌지만,[10] 김유동이 9회 만루홈런을 쳐내면서 MVP에 선정되어 4승 1무 1패로 우승을 차지했다.[11]
그러나 1983년 시즌에는 박종훈한대화장호연정선두만을 신인으로 확보했고,[12] 박철순, 선우대영, 강철원 등의 주력 투수와 구천서 등의 야수진도 부상을 당하면서,[13] 결국 전기리그 6위, 후기리그 5위를 기록 순위가 5위로 하락했다.[14] 그해 10월 14일, 김영덕 감독이 팀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15]

[편집]김성근 감독시대 ( 1984년 ~ 1988년 )

1984년, 새 감독으로 투수 코치였던 김성근이 취임했고, 코치진도 보강되었다.[16] 선수도 재일교포 최일언홍신차등을 비롯해 신인 윤석환김진욱김광림 등을 확보했다.[16]그리고 계형철이 14승, 박상열 12승, 장호연이 평균자책점 1위의 성적을 거두었고, 야수진에서도 부상 공백이 메워지며 9연승으로 치고 나갔다.[14] 그러나 이후 6연패에 빠지며 삼성에게 전기리그를 내주었고, 후기리그에서도 초반에는 선두로 질주했지만, 8월 15일 부터 선두 자리를 내주었다.[17] 마지막 두 경기에서 OB는 해태와, 롯데는 삼성과 맞붙었는데, 삼성은 롯데에게 일부러 패하면서 OB는 후기리그도 2위에 머물렀다.[18]
1985년, OB는 연고지를 대전에서 서울 동대문 야구장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해, 전기리그는 2위를 기록했으나 후기리그는 5위로 마무리했다. 1986년, OB는 다시 구장을 잠실 야구장으로 옮기고, 전 연고지에는 빙그레 이글스가 창단되었다. 그해, 플레이오프 진출권이 달린 롯데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김형석의 동점 홈런과 이후 안타로 4-3으로 승리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19]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게 2승 3패로 패한다. 1987년, 전기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지만 해태에 2승 3패로 탈락한다. 1988년, 개막전에서 장호연은 무탈삼진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다.[20] 이후 전기리그 3위, 후기리그 5위를 기록한다. 시즌 후에 두산 그룹은 우승을 못한 김성근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으려 했고, 김성근 감독도 사임하여 신용균 코치, 최주억 코치, 박상열 투수가 태평양으로 이적하게 된다.[21]

[편집]1989년 ~ 1994년

1989년, 제3대 이광환 감독이 취임했다. 그는 선수들 개개인에 개성과 책임감을 믿고 맡기는 '자율 야구'의 기치를 들었으나, 오히려 10연패, 11연패를 기록하고 그 해 6월 19일 시즌 중 교체 되었다.[22] 제4대 감독으로는 타격 인스트럭터였던[23] 이재우였다. 그는 1990년 대행 기용되어 1991년 정식으로 감독에 취임했다. 하지만 그 해 9월 9일 시즌 중에 교체되었다.[22]
제5대 감독은 최초의 선수 출신 감독으로 윤동균이 내정되었고,[23] 그는 남은 경기를 5할의 승률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다.[24] 1992년, 본격적인 첫 시즌에 그는 김민호장원진안경현등의 신예들을 대거 발탁하여 5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25] 1993년에는 초반에는 5위에 머무르다가 9월부터 연승을 시작해 마지막 경기에서 LG에게 승리하며 3위로 6년만에 팀을 포스트 시즌 진출로 이끈다.[25] 그러나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오히려 LG에게 1승 2패로 탈락한다.
1994년, 선발진은 김상진권명철강병규 등의 젊은 투수로 구성되었고 불펜에는 마무리 김경원, 노장 박철순등이 있었다. 타선에서도 김형석, 김상호의 중심 타선과 김민호를 중심으로 한 수비진이 있었다.[26] 개막전은 잠실 쌍방울 전이었으나 대통령이 시구를 하고 관전하는 것을 의식한 탓인지 선발 자원 4명을 투입하고도 패배한다.[27] 그리고 5월 중순 부터는 6,7위에 머물렀고 7위를 굳히는 형세가 되었다.[27] 이러한 부진의 이유는 장호연이 2승, 쌍방울에서 트레이드 해 데려온 강길룡이 1승만을 기록한 것도 있었다.[27] 그리고 9월 4일, 군산 쌍방울 전에서 1-2로 패배하자 윤동균 감독은 '몽둥이를 들겠다'고 했고 선수들은 이를 거부하자 윤동균 감독이 '맞기 싫은 선수들은 다 짐싸서 서울로 올라가라'라고 하였고 17명의 선수들은 이탈해 서울로 올라갔다.[28][29] 선수들 중 최고참인 박철순은 '윤 감독과 같이 옷을 벗겠다'라고 사태를 무마시키려 했다.[29] 결국 9월 14일, 윤동균 감독은 사태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났고,[30] 박철순, 김상호, 김형석, 장호연, 강영수 등의 다섯 고참 선수들은 계약을 해지하기로 했다.[31] 그러나 그들은 팀 전력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부진했던 강영수 만을 태평양으로 트레이드 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31] 그리고 남은 시즌은 최주억 코치가 감독직을 대행했다.[32]

[편집]김인식 감독시대; (1995년 ~ 2003년)

1995년, 제6대 감독인 김인식이 취임했다. 선수단 이탈 사건을 겪었으나 예상과 달리 연습생 출신의 김상진이 3경기 연속 완봉승[33]을 포함해 17승을 올렸고, 이어 권명철이 15승, 그리고 신인 이용호진필중은 김경원의 빈자리를 메워주었다.[34] 타선에서는 1번 타자이자 유격수인 연습생 출신 김민호, 고졸 신인 심정수는 21홈런으로 분발했다.[34] 시즌 구도는 서울 라이벌인 LG와 OB의 선두 다툼으로 흘러갔는데, LG가 8월 중순에 6경기차로 간격을 벌렸다.[34] 그러나, 이후 LG가 연패를 하자 OB는 6연승, 4연승을 거두고 9월 10일에는 처음으로 선두를 탈환한다.[34] 그리고 마지막 27경기에서 OB는 20승 7패를 기록하면서 LG에 반 경기차로 정규 시즌에서 우승한다.[34] 롯데와의 한국시리즈에서는 7차전에 롯데에게 4-1로 승리하며 사상 두번째 우승을 거머쥐었다.[35]
1996년에는 최하위, 1997년에는 5위를 기록했다. 1998년, 이 해에는 10년 이상 중심 타선을 지켜오던 김상호, 김형석이 빠지게 된다.[36] 그 때문에 8월 말까지 꼴지를 기록했으나 외국인 타자 타이론 우즈김동주, 심정수의 활약에 힘입은 시즌 막판 연승으로 1경기차 4위에 오른다.[37] 그러나 준플레이오프에서는 LG에 2연패로 탈락하게 된다.
1999년 1월 5일, 구단 명칭을 현재의 '두산 베어스'로 바꾼다. 이 해 우즈의 활약과 3할 20홈런의 김동주, 3할3푼5리의 타율에 31홈런을 친 심정수의 활약으로 드림리그 1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만 한화에 4연패로 탈락한다.[38] 2000년, 우동수 트리오는 99홈런 308타점을 기록했으나 현대의 91승에 밀려 드림리그 성적은 2위였다.[39] 플레이오프에서 LG에게 4승 2패로 승리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고, 한국시리즈에서는 1~3차전을 통틀어 3점 밖에 내지 못했으나 4~6차전을 모두 쓸어 담는다.[39] 하지만 7차전에서 톰 퀸란에게 연타석 홈런을 맞고 패배한다.[39]
2001년, 심정수는 선수협 사태로 심재학과 트레이드 되었으나 심재학은 그해 3할4푼4리에 24홈런 88타점을 기록해 심정수의 빈틈을 메운다.[40] 두산은 상당한 자금력의 삼성, 현대에 밀려 3위를 기록했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를 2연승으로 일축한 뒤 플레이오프에서도 현대를 1패 후 3연승으로 가볍게 제치고,[41] 한국시리즈를 삼성과 맞붙는다.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은 갈베스의 구위에 밀려 1차전을 4-7로 패한다.[42] 그러나 다름 날 경기가 우천 취소가 되자, 활기를 다소 되찾은 두산은 장원진의 3점홈런으로 9-5로 2차전을 승리한다.[42] 잠실 3차전은 난타전이었으나 11-9로 승리한다.[42] 그리고 4차전, 두산은 우즈의 2점홈런으로 선취점을 얻었지만 2회초 삼성에게 타자 일순을 허용하여 8점을 내준다. 하지만 3회말, 두산은 김동주의 만루 홈런, 안경현의 백투백 홈런등으로 12점을 뽑아내고, 결국 18-11로 승리한다.[43] 이날 경기는 역대 한국시리즈 한 경기 최다 점수, 최다 안타, 최다 점수차 역전 경기였다.[43] 하지만 4차전에서는 심기일전한 삼성에게 10점차로 대패한다.[43] 그리고 6차전, 1회초 삼성은 2점을 선취했으나 우즈의 150m 홈런으로 3-2로 역전시켰고, 다시 삼성이 3점을 냈지만 두산은 다시 동점을 만들어낸다.[43][44] 그리고 8회말에 심재학의 얕은 좌익수 플라이에 정수근이 홈으로 들어오며 6-5로 역전하기에 이른다.[44] 그리고 진필중이 마지막 타자 마해영을 삼진으로 잡아내며 세번째 우승을 달성한다.[44] 한국시리즈 MVP는 시리즈에서만 7홈런을 기록한 우즈가 차지한다.
이후 FA, 트레이드로 팀 전력이 나빠지면서 2002년에는 5위, 2003년에는 7위를 기록했으며 2003년 시즌이 끝난 후 김인식 감독은 감독직에서 물러난다.

두산 베어스(


두산 베어스(Doosan Bears)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 야구팀이다. 한국야구위원회 소속이며, 송파구잠실동에 있는 잠실야구장을 LG 트윈스와 공동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1982년 1월 15일 대전을 연고로 'OB 베어스'라는 팀명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 야구팀으로 창단되었다.초대 단장은 박영민, 초대 감독은 김영덕이었고 창단 첫 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1985년부터 연고지를 서울특별시로 이전했다. 하지만 이후 중하위권을 기록하다가, 1994년 김인식이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1995년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OB 맥주가 벨기에의 주류 기업인 인터브루에 매각되면서 1999년 1월 5일에 두산 베어스로 팀 이름을 바꾸었다. 2004년부터 김경문이 감독을 맡고 있었는데 2011년 6월 13일 자진사퇴하면서 김광수 감독 체제로 2011시즌을 치뤘다. 그 후 2012시즌 전 불펜코치를 맡고 있던 김진욱 코치를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엘지트윈스 사건 사고


사건·사고 및 논란

[편집]LG 트윈스 청문회 사건

엘지트윈스 측에 확인한 결과 2011년 8월 8일 10여 명의 팬들이 잠실구장을 찾아 광주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에 올라타던 선수들에게 "야구 좀 똑바로 하라"며 심한 말과 일부 욕설까지 퍼부은 일명 '청문회'를 벌였다는 것이다. 특히 청문회를 자처(?)한 팬들 중 일부가 선수들에게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내뱉자 몇몇 선수가 이를 참지 못하고 맞대응을 해 문제가 더욱 커지게 됐다.
인터넷에서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그 선수 그렇게 안봤는데 실망이다" "몇 년간 LG만을 응원했는데 이제 그만둬야 할 것 같다"는 분노에서부터 "그럴리가 없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믿지 않겠다"는 등의 옹호까지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엘지트윈스 관계자는 그러나 "감독과 코치를 비롯해 대부분의 선수들은 팬들의 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네 알겠습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며 "다만 일부 선수들이 팬들과 언쟁을 벌인 것이다"고 설명했다.[4]

[편집]주석

엘지트윈스 통산기록


통산 기록

연도팀명순위승률포스트 시즌수상 선수감독
1982MBC전기 3위
후기 3위
463400.575백인천
1983전기 3위
후기 1위
554320.561한국시리즈 : 해태 전 0-3 패백인천
유백만
김동엽
1984전기 3위
후기 3위
514810.515어우홍
1985전기 5위
후기 6위
446510.404어우홍
김동엽
1986전기 4위
후기 3위
594180.590김건우 (신)김동엽
1987전기 5위
후기 4위
505170.495김동엽
유백만
1988전기 7위
후기 6위
406440.389이용철 (신)유백만
19896위496740.425배성서
백인천
1990LG1위714900.592한국시리즈 : 삼성 전 4-0 승김동수 (신)백인천
19916위537210.425
19927위537030.433이광환
19934위665730.536준플레이 오프 : OB 전 2-1 승
플레이오프 : 삼성 전 0-3 패
19941위814500.623한국시리즈 : 태평양 전 4-0 승유지현 (신)이광환
천보성
19953위744840.603플레이오프 : 롯데 전 2-4 패천보성
19967위507150.417
19972위735120.587플레이 오프 : 삼성 전 3-2 승
한국시리즈 : 해태 전 1-4 패
이병규 (신)
19982위636210.504준플레이 오프 : OB 전 2-0 승
플레이오프 : 삼성 전 3-1 승
한국시리즈 : 현대 전 2-4 패
1999매직3위617010.466
2000매직 1위676330.515플레이오프 : 두산 전 2-4 패이광은
20016위586780.464이광은
김성근
20022위666160.520준플레이 오프 : 현대 전 2-0 승
준플레이오프 : KIA 전 3-2 승
한국시리즈 : 삼성 전 2-4 패
김성근
20036위607120.458이광환
20046위597040.457이순철
20056위547110.432
20068위477540.385양승호
20075위586260.483김재박
20088위468000.365
20097위547540.406
20106위577150.429박종훈
20116위597220.450
20127위577240.442김기태
LG 트윈스 31시즌17811847101한국시리즈 우승 2회

[편집]역대 감독